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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바디캡. XF 56mm APD. 본문

소감

최고의 바디캡. XF 56mm APD.

화미레 2021. 12. 18. 06:12

X-S10 + XF 56.2 APD

 이 글에는 기술적인 내용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이 렌즈의 수치를 나타내는 MTF 차트같은거요.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각자 주력 카메라와 렌즈가 있습니다. 그리고 카메라보다 많은게 렌즈고 우리는 그 수많은 렌즈 사이에서 늘 갈등을 합니다. 같은 화각대라도 사진의 결과물이 조금씩 다르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렌즈의 특성이 각각 다르다는 것에 기반합니다. 그 특성들중 몇개를 간략하게 나열하면 회오리 보케, 동글동글한 보케, 녹아드는 보케, 높은 선예도, 소프트한, 플레어 현상, 따스한 색감 등등. 이런 각자의 특징에 따라 개성있는 결과물을 뽑아주는 렌즈 중 사용자가 픽한 최애 렌즈를 가리키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디캡 렌즈."

 바디캡은 잘 알다시피 카메라 센서를 보호하기 위해 씌우는 뚜껑을 말합니다. 바디캡 렌즈라 하면 렌즈를 이 바디캡 대용으로 쓸 만큼 자주 그리고 거의 항시 마운트해놓는다는 소리입니다. 저도 카메라에 입문한지 대략 햇수로 4년차쯤 됬는데 이런 렌즈를 찾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후지필름의 XF 56.2 APD(이하 56.2 APD)에 눈길이 가게 됩니다. 환산화각은 84mm. 대략 85mm에 해당하는 대중적인 화각 중 하나죠.

후지필름 에비뉴엘점에서.

 56.2 APD 이전에 제가 사용하던 렌즈는 XF 18-135 F3.5-F5.6, 빌트록스의 33.4 였습니다. 23mm도 쓰긴 하는데 X100V에 붙박이로 달려있는 거라 렌즈라 해야할지 애매하네요. 아무튼 주로 환산 35~75mm 영역을 좋아하던 제게 환산 85mm는 다소 생소한 화각이었습니다. 18-135를 쓰면서도 135로 확 땡기면 땡겼지 잘 쓰지는 않던 화각이었거든요. 더하여 더 렌즈를 늘릴 여력도 없고 해서 일단 직접 써보고 판단해보자. 해서 후지필름 파티클에서 56.2 APD를 3일 대여 프로그램을 통해 사용해보게 됩니다.

  사실 첫날에는 이 렌즈의 매력을 잘 몰랐습니다. 그냥 빛망울이 동글동글하게 잘 나오네 정도였어요(빛망울 표현에 약간 어이가 없긴 했지만). '아 괜히 빌렸나' 하는 후회가 나올 정도였고 다음날 빠른 반납을 결심했으니까요. 그런데 큰 화면으로 그날 찍은 사진을 보니 56.2 APD만의 특징 중 하나인 높은 선예도 + 녹아드는 보케가 무엇인지 체감이 됬었죠. 그래서 반납을 하되 한번 써보자 싶어 다음날 무작정 건대입구에서 잠실에 있는 후지필름 매장까지 걸어가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56.2 APD를 마운트한 채.

배경 처리된거 보고 한동안 뭔가 싶었습니다. 심지어 포커싱된 부분은 선예도도 높아요.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특히 이 사진을 보고 뭐로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초점 맞는 부분은 이렇게 날카로울수가 없는데 그 외 다른 부분 뭉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준망원 화각 특유의 배경압축 효과 덕에 특정 상황에서는 정말 피사체 외 보이는게 없을 정도. 찍어보고 허탈해서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 저에게 환산 85mm쯤 되면 인물사진(포트레이트)에 적합한 환산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이걸 잘 쓸 수 있나 싶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빌트록스 33.4 쓸때보다 프레이밍 하기가 더 편했습니다. 그냥...툭툭 갈기니 뭐든 나오더라구요. 그렇게 잠실까지 걸어가면서 56.2 APD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기억할게!

 반납 후 고민했습니다. 결심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건 사야 한다." 라고. 집에 오자마자 가진 렌즈(XF 18-135, 빌트록스 33.4)를 모조리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렌즈를 어떻게든 팔고 그 사이에 꿀매물을 놓치고 예상보다 약간 초과된 금액으로 56.2 APD를 들여오기까지 딱 8일 걸렸습니다. 이후 반납에 대한 부담없이 야간에 찍어본 이 렌즈는...네...말도 안 됩니다 진짜.

 F1.2라는 결코 낮지 않은 조리개를 통해 야간에도 셔터스피드를 1/60까지 무난하게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ISO가 8000까지 올라가긴 했지만 X-S10의 노이즈 억제력 덕분에 못 볼 만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더군요. 흔들려요? 괜찮아요 X-S10에는 IBIS 있어요 ㅎㅎ 무식하리만큼 매력적인 선예도는 야간에도 여전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거리에 예쁜 빛이 가득한데, 이러한 빛이 배경으로 존재할때 그 빛망울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56.2 APD가 활약하기 좋은 시즌이죠. 저도 신나게 들고다니면서 찍고 다닐 예정입니다.

속칭 '밥그릇 후드'라 불리는 형태의 XF 56.2 APD의 후드.

 여기서 잠시. APD. 아포다이제이션(Apodization)는 무엇인가. 복잡한 용어설명 및 기술적인 부분은 제끼고(사실 제가 설명을 잘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진 결과물만 두고 이야기하면 아포다이제이션 필터는 가운데는 환하고 테두리쪽으로 갈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에서 포커스가 맞은 부분은 선예도가 높게 나오는데 반해 디포커스된 부분은 부드럽게(물체의 테두리가) 나오게 됩니다. 보케의 윤곽을 부드럽게 해준다고 하면 이해가 더 쉬울까요? 56.2 APD의 특징을 설명할때 꼭 나오는 '녹아드는 보케'는 이 아포다이제이션 필터 때문입니다.

디포커싱된 물체들의 부드럽게 처리된 테두리 및 빛망울에 주목.

 해서 이 렌즈는 조리개값 표현하는 숫자가 2개가 있고 렌즈 구성은 어떻고...하는 부분은 다 뺄게요. 몰라도 찍는데는 상관이 없거든요.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을만한 특징도 아니고요. 그런데 저는 이 부드러운 보케가 너무나 좋습니다. 전반적으로 사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그런 매력이 있어요. 

X-S10 + XF 56.2 APD

  물론 이 렌즈가 완벽한 렌즈는 아닙니다. AF 잡는 속도가 느린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최대개방으로만 주야간 할거 없이 찍어서 그런가 모르겠는데, 원하는 부분에 포커스 정확하게 맞추기도 편하지는 않습니다. 주로 정적인 풍경사진을 찍는 저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요. 더불어 조리개링은 툭하면 돌아가있고 최단촬영거리가 70cm로 결코 가깝지 않아 찍을때 체크해야봐야할게 많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방진방습 안되는건...어차피 X-S10도 방진방습 안 됩니다. 비오면 뭐, X100V 들고 나가서 찍죠.

참고로 렌즈 안을 보면 예쁜 와인색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렌즈를 좋아할수밖에 없을거 같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과물 좋으면 그걸로 된거에요! 그 결과물 뽑아내는데 드는 노력이 적을수록 더 좋을테구요! 그러니까 높은 선예도 및 부드러운 보케를 보여주는 56.2 APD는 좋은 렌즈입니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자. 슬슬 마무리 지을때네요. 처음에 제가 바디캡 렌즈에 대해 이야기했죠? 글 제목에도 들어갔고요.

 

 그래서 결론은, 앞으로 XF 56.2 APD를 제 바디캡 렌즈로 선포합니다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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